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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우크라이나 여행 추천

by 시작이 반~ 202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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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동유럽에 위치한 나라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나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으로는 흑해 면해 있습니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간단한 국기는 파란 하늘과 풍요로운 곡식이 울리는 대지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요?^^ 단풍과 오래된 교회, 층계 낭만적인 거리는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역사적인 건축물이 즐비한 리비, 모나르 마을이라 불리는 키예프, 흑해 연안의 리조트와 무역항으로 번창한 요소를 겸한 오데사 아름다움도 마을마다 다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우크라이나 여행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카르파티아 지방 목조 교회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에 걸쳐 있는 카르파티아 지방에는, 점재하는 목조 교회(체르쿠바) 있어, 중의 16( 절반인 8동이 우크라이나) 2013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최초의 등재입니다.

16~19
세기에 동방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의 커뮤니티에 의해 건설된 첼쿠바는 통나무를 수평으로 조립하는 '수평 통나무 조립법'으로 불리는 독특한 건축 방식으로 지어 있습니다. 동방 정교회의 개성적인 건축 양식과 카르파티아 지방의 전통의 요소가 혼합되어, 신자들이 믿고 있는 우주 진화론의 이미지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교회는 도로호비치 게오르기오스 성당, 천사수 미하일 회중 성당, 지성삼자 성당이 유명합니다.
현재는 교회는 물론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교회도 있습니다.귀중한 목조건축의 교회는 볼만한 관광지랍니다!

2. 사랑의 터널

우크라이나 서부의 작은 마을인 클레이벤과 오르치브를 잇는 철도에 현지인들이 ' 터널 오브 러브(사랑의 터널)'라고 부르는 수풀이 무성한 녹색 아치가 있습니다. 영화 <크레바니 사랑의 터널> 촬영장소로 현지인들에게 유명해지면서 세계 커플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폐쇄된 철로로 보이기 쉽지만, 하루에 3 정도 현지 공장으로 가기 위해 목재 운반용 기차가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날 때마다 나뭇잎이 떨어져 나가면서 터널 모양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터널에는 전설이 어요^^

 '커플이 손을 잡고 걸으면 영원히 함께하고' '전철이 다닐 키스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합니다. ^^

계절마다 분위기도 달라/져 가을이면 초록의 수풀에 단풍이 들고 다른 표정을 있는 터널이기도 합니다.

3.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케의 고대 도시와 농업 영역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근교에 세계유산,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케의 고대도시와 농업 영역이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세바스토폴 근교에 남아있는 고대 도시유적과 주변에 남아있는 농업유적으로 이루어진 8개의 구성으로 2013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케는 기원전 5세기에 도리스인이 구축한 식민도시로, 케르소네소스의 유적은 '우크라이나의 폼페이(이탈리아 나폴리 근교에 있던 고대 도시 유적)'라고 불리며 과거에는 우크라이나 지폐에 채용되었습니다.

일반 주거지는 도시건축 초기부터 비잔츠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주거지가 출토되었고, 와인 양조장 등도 발굴되었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고대의 경관은 희귀한 세계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케르소네소스에 남아 있는 농업 구획 터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여 고대 농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던 입니다.

 

 

4. 스왈로즈네스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로부터 900 km 떨어진 흑해의 중심부, 크림 반도에 스왈로즈네스트가 있습니다. "성이라고 해도 크기는 작고, 높이 22m, 하바 10m 아담한 건물이 40m 되는 절벽에 펼쳐져 있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보입니다.

원래는 목조로 지은 오두막집으로 1985년에 러시아 장성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인이 여러 바뀌었고 1911 석유산업으로 진출했던 독일 귀족들에 의해 지금의 성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1900 무렵에는 레스토랑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1900 중반 경에는 지진으로 붕괴되어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현재는 레스토랑 영업을 하고 있어 우아하게 흑해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있습니다.

5. 소피아 대성당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중심에 위치한 소피아 대성당으로, 1990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건립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0 정도 전인 1017 또는 1037년에 키예프의 대공국인 야로슬라우 대공에 의해 페체니히의 대군에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대성당은 11~13세기 중반까지 루시의 대주교 자리, 대공들의 즉위, 결혼식, 장례식 장소, 다른 나라의 사절단과의 접대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루시 최초의 도서관과 대학교가 들어섰습니다.

"
대성당은 중세 유럽 건축물의 가장 건물 하나로, 넓이 54m, 길이 41m 크기였습니다. "성당 안은 아름다운 색채로 장식되어 있고, 돌이나 유리 등을 박아 무늬를 나타내는 모자이크 기법등 너무나 아름다운 곳으로, 키예프를 방문한다면 빼놓을 없는 우크라이나 관광지입니다.

6. 리비우 역사 지구

우크라이나의 고도 리비우 역사 지구는 루시의 갈리츠키 공에 의해 13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14세기 이후에는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의 지배 하에 놓이면서 서유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아름다운 문화와 거리가 뿌리내린 바로크 양식의 교회, 돌층길이 깔린 거리는 유럽의 진주라고도 불립니다.

리비브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소중히 보존되어 , 건물은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 많아 1993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거리에는 박물관도 많아 종교예술 박물관, 1735년에 창업한 약국 박물관, 주로 16세기 무기를 모은 박물관 리비브의 역사를 많이 배울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7.부코비나 달마티아 주교의 저택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우치에 남는 건조물군으로 2011, 세계유산(문화유산) 등록된 관광지 입니다.
부코비나가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 있던 1864년부터 1882년까지 체코인 건축가 요세프 플라브가의 설계에 따라 부고비나 부주교들의 주거와 성당, 수도원 등이 세워졌습니다.

당시 번영했던 동방정교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하며, 여러 시대의 건축양식이 담긴 역사주의 건축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는 체르니우치 대학교의 일부로 이용되고 으며, 부지 내에는 저택뿐만 아니라 안뜰, 수도원, 성당 등이 포함되어 있어 박력이 있는 건축물 군입니다.

8. 미하일 황금 수도원

키예프의 상징으로 하나라고도 불리는 미하일 황금돔 수도원.

대공가의 수호천사 미하일(미카엘의 우크라이나 읽기) 따서 미하일 수도원으로 불리며 중세 키예프에서는 가장 교회입니다.

1936
년에 구소련에 의해서 파괴되었지만, 우크라이나 독립시에 재건되어, 2000년에 수도원으로서 재개했습니다.
입구의 종루 바로 앞을 비롯해 수도원은 전체적으로 파스텔풍의 색조를 띠고, 색채가 풍부한 그림이 있습니다."외관의 벽면은 연한 하늘색, 지붕은 황금색으로 화려한 건물이지만, 안은 매우 아늑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곳입니다. "

9. 마리아 궁전

마리아 궁전은 키예프에 있는 궁전입니다. 우크라이나 최고 의회 의사당에 인접해 있으며 현재 궁전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744~1752
사이에 러시아 여제 엘리자베타의 명에 따라 키예프 궁으로 지어졌습니다. 설계자는 바르톨로 멜로 라스트렐리, 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바로크 양식을 조화된 건축물로 완성했습니다.

1819
화재로 2층이 불에 탔으나 1870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와 황비 마리아의 키예프 방문을 계기로 재건되었습니다. 그때 마리아 궁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으며, 중요문화재로서 특정일에 일반에게 공개도 되고 있습니다.

 

 

10. 키예프

우크라이나의 국립대학인 키예프대수도 키예프에 있습니다.

1834년에 창립되어 우크라이나에서 번째로 오래된 대학 입니다. 전신은 17세기에 설립된 키예프 모힐라 아카데미, 정식 명칭은 탈라스 셰브첸코 기념 키예프 국립대학.

"1834
62명의 학생과 함께 시작된 키예프대학 학부는 철학부로만, 1835년과 1847 법대, 의대가 새로 추가됐고 이후 철학부가 역사·문헌대학과 자연과학대로 나뉘었습니다.

""1917 시작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전쟁에서는 많은 재학생이 목숨을 잃었고, 1918 발생한 크루티 전투에서는 비극의 학생 부대로서 지금도 추모식이 진행 중입니다"

그런 키예프 대학의 교사는, 한층 눈에 띄는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과거 니콜라이 1 시절, 징병 거부 운동을 일으킨 학생들에게 벌로 피의 색으로 문지르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1. 황금문

황금 문은 키예프가 전성기인 1037년에 키예프 공국의 야로슬라우 현공이 도시 성벽의 대문으로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이름의 유래는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던 비잔츠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황금 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건축 당시 위에는 금박 지붕이 달린 수태고지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1240
이전까지 있었던 문은 7.5m, 높이 9.5m 넘었다고 하며 안은 모자이크와 벽화로 장식했습니다. 그러나 13세기에는 몽골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18세기에는 일시 보관을 위해 땅속에 묻혔습니다.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어 1982년에 당시의 문을 재현하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새로운 문은 유적을 덮듯이 세웠기 때문에 실제의 문보다 훨씬 크게 재현하였습니다.

또한 무소르그스키의 대표곡에 등장하는 '키예프의 대문' 바로 문입니다.우크라이나 관광으로 방문해 보세요.

 

이상, 우크라이나 여행한 대한 소개 였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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